법정
● 법정스님
1. 범정스님의 생애 신문기사
'버리고 또 버렸던' 법정스님의 생애1)
11일 입적한 법정(法頂)스님은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스님이다. 불자나 스님들 사이에서도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에 이어 인지도가 높은 스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산문집의 제목처럼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법정스님은 1990년대 초반 "나는 아마 전생에도 출가수행자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직관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금생에 내가 익히면서 받아들이는 일들로 미루어 능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법정 스님은 한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한다. 그는 대학 재학중이던 1955년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하고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날 집을 나선다.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대산으로 가기 위해 밤차로 서울에 내린 스님은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스님(1888-1966,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 종정)을 만나 대화한 후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는다.
"삭발하고 먹물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그길로 밖에 나가 종로통을 한바퀴 돌았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부목(負木.땔감을 담당하는 나무꾼)부터 시작해 행자 생활을 했다. 당시 환속하기 전의 고은 시인, 박완일 법사(전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등이 함께 공부했다. 법정스님은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에 참여하다 4.19와 5.16을 겪은 스님은 1960년대 말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운허 스님 등과 함께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절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했던 법정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후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 다시 걸망을 짊어진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스님은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난해 겨울은 제주도에서 보냈다가 건강상태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지만,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하면서 "강원도 오두막에 가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법정스님은 평소에는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도 계속했다. 특히 1996년 고급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김영한 할머니(1999년 별세)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기부 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한 후 회주로 주석하면서 1년에 여러 차례 정기 법문을 들려줬다. 법정스님은 2003년 12월에는 길상사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하지만 정기법문은 계속하면서 시대의 잘못은 날카롭게 꾸짖고, 세상살이의 번뇌를 호소하는 대중들을 위로했다. 산문인으로서 법정스님은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우리 출판계 역사에도 기록될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남겼다. 스님은 해인사에 살 당시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가리켜 "빨래판같이 생긴 것이요?"라고 묻던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라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남아있는 한 한낱 빨래판에 지나지 않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말과 글로 옮겨 전할 방법을 고민했다.
또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맹목적인 수도생활에 선뜻 용해되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스님의 이런 원력은 스님의 이름과 동의어처럼 불리는 산문집 '무소유'의 모습으로 꽃을 피운다. '무소유'는 1976년 4월 출간된 후 지금까지 34년간 약 180쇄를 찍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법정스님은 다른 종교와도 벽을 허물었던 것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법정스님은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고,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했다. 법정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이밖에 조계종단과 사회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법정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고 1994년부터는 환경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시민운동단체인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어왔다. (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1) 법정 스님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한 신문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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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정스님이 남기신 책, 주요 어록 및 메시지 신문기사
산문집으로 되새기는 법정의 '무소유'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무소유' 중에서)
법정스님하면 떠오르는 단어 '무소유'. 법정스님이 1970년대 초반부터 쓴 글을 모아 1976년 펴낸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범우사)'를 비롯해 수십권의 책에서 한결같이 설파한 무소유의 정신은 무한경쟁과 탐욕의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등불이다. 법정스님의 여러 산문집은 스님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격조 있는 필치로 고된 일상에 지친 일반인을 위로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불교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즉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없다는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이런 청백가풍(淸白家風)의 무소유의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라고 권한 스님의 글은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얻었다. 산문집 '무소유'에 수록된 1971년의 글 '무소유'에는 법정스님이 평생 수십권의 책을 통해 반복해 강조했던 무소유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시 3년 째 난초 화분 둘을 애지중지 길렀다는 스님은 장마 후 쏟아지는 햇볕 아래 화분을 놓고 왔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거처로 돌아간 일화를 소개하며 자신의 집착을 뉘우친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스님은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라고 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쓴다. 1992년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한 번 출가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간 스님은 1995년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이어 새천년을 앞둔 1999년 12월에 수상집 '오두막 편지'를 내놓는다. '오두막 편지'에서 스님은 "현재 내가 몸담아 사는 산중 오두막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단순하고 간소하게 내 식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일곱 해째 기대고 있다. 어디를 가보아도 내 그릇과 분수로는 넘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나는 이 오두막을 거처로 삼고 있다"고 썼다. 또 "'소욕지족(少慾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스님은 강원도 산골 생활 17년째가 되던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에 기고했던 수필을 모아 '아름다운 마무리'를 펴내 삶의 마지막에 선 노승의 마음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스님은 2007년 한차례 병으로 입원하면서 이미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길상사를 드나들면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어간다. 그때마다 마음이 개운치 않고 아주 무겁다. 말로는 무소유를 떠벌리면서 얻어 가는 것이 너무 많아 부끄럽고 아주 부담스러웠다. 늙은 중이 욕심 사납게 주는 대로 꾸역꾸역 가지고 가는 꼴을 이만치서 바라보고 있으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스님은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스님이 말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역시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해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은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법정스님의 첫 법문집인 '일기일회(一期一會, 2009년 6월 출간)'에도 무소유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다. 스님은 2008년 5월24일 여름안거 결제를 맞아 했던 법문에서도 '버리고 떠나기'를 강조했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 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연합뉴스 조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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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名文들…<무소유><아름다운 마무리><내가 사랑한 책>
◆ 법정스님 입적
법정 스님의 문명(文名)을 널리 알린 작품은 무엇일까. 누구도 주저없이 '무소유'(1976년)를 꼽을 것이다. 소유와 집착에 대한 깨달음을 기록한 '무소유'를 비롯해 35편의 수필을 모은 이 책은 현대 한국 수필의 대표격으로 평가받는다. 인기도 많아 34년 동안 180쇄를 찍었고, 지금까지 330만부가 팔렸다.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무소유'는 스님이 평생 동안 강조했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ㆍ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없다는 가르침)'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명언에서 시작한 글은 당시 스님이 애지중지했다는 난초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장마 후 쏟아지는 햇볕 아래 화분을 놓고 왔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거처로 돌아갔다는 스님. 그는 이 일화를 회상하며 "'소유가 인간을 싸우게 하며, 소유에 대한 집착이 인간을 괴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스님은 그 이후에도 무한경쟁과 탐욕의 시대에 우리가 지닐 마음의 자세에 대해 논한 명문을 많이 남겼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 등은 출간되자마자 각박한 세상살이에 찌든 현대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모두 큰 인기를 얻었다. 2007년 한 차례 병으로 입원한 후 쇠약해진 자신을 돌아보며 느낀 심정을 담담하게 표현한 '아름다운 마무리'(2008년)도 또 다른 대표작. 그는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정 스님의 글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담았으면서도,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한 문학평론가는 "스님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격조 있는 필치도 감동에 백 배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스님은 폐암으로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책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은 '애서가'였다. 최근에도 '내가 사랑한 책'을 펴냈고, 이 책이 결국 법정 스님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내가 사랑한 책'은 스님이 여러 곳에서 언급했던 300여 권의 책 중에서 50권의 책을 직접 골라 소개한 것으로, 종교 관련 서적 외에도 동서양 문학작품과 환경 서적 등 다양한 책을 담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사티쉬 쿠마르의 '끝없는 여정' 등 현대문명의 효율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보다 본질적인 삶이 무엇인지 질문을 제기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스님은 출가할 당시를 떠올리며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어렵사리 모은 책들을 버리고 떠나는 게 못내 망설여졌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손동우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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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무소유’ 읽은 뒤 “이 책 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법정스님이 남긴 저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1971년 3월 <현대문학>에 쓴 글에서 법정 스님은 어떤 스님한테서 선물 받은 난초 두 뿌리를 정성스레 기른 얘기를 하면서 거기에 일희일비 노심초사하다가 결국 친구에게 줘버린 뒤 비로소 그 몇 년간의 집착에서 벗어난 얘기를 썼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유정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무소유>중에서)
이 짤막한 에세이에 붙은 '무소유'라는 제목은 이후 법정 스님의 일부, 어쩌면 그 자체가 됐다. 1976년 4월 이 글이 포함된 에세이집 <무소유> 가 출간됐고 그야말로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스님의 이 첫 책은 이제까지 모두 179쇄를 거듭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다.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이 책을 두고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2001년 샘터사에서 낸 스님의 9권짜리 전집 중 첫 책인 <서 있는 사람들> 은 1978년 무렵에 처음 찍어낸 책인데, 23년 만에 낸 그 개정판 서문에 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1970년대 그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할 말을 할 수 없고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숨막힌 때였다. 글 한 줄을 쓰려면 활자 밖의 행간에 뜻을 담아야 했던 그런 시절이다. … 책에 실린 글들에서 내 40대의 펄펄한 기상이 엿보여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몇몇 친구들은 긴급 조치에 걸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입적을 예감했음인지 스님은 2008년 말에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산문집을 냈다. 이 산문집을 낸 문학의숲 출판사는 지난해 스님의 법문들을 묶은 <일기일회> 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도 출간했다. 스님이 펴낸 책은 모두 20여종에 이르며 그중 상당수가 변함없이 독자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다.
스님은 대중적 문필활동의 시작을 알린 '무소유'에서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스님은 사유의 향기가 밴 책들만 남기고 빈손으로 떠났다. (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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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법문·저서’로 만난 법정스님
“풀꽃 한송이, 들녘에 봄물결 일으키듯 이웃의 빛이 되어주는 게 아름다운 삶”
“부처님 말씀 듣고 이해했다면 그대로 일상에서 실천해야 진정한 불자”
"누구의 글이든 객관적으로만 읽고 지나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의 삶을 그 거울에 비춰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글을 읽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읽는 것입니다."
대표적 문필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법정 스님은 2008년 길상사에서 열린 가을 정기법회에서 글 읽기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발표될 때마다 큰 반향을 불러온 스님의 글은 조계산 송광사 불일암, 문명의 이기가 없는 강원도 산골 오지의 오두막에서 한 자 한 자 홀로 원고지를 메운 것이다. 치열한 수행과 방대한 독서를 통해 빚어낸 글은 맑고 깨끗한 샘물이자 죽비였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허기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고, 또 경책했다. 스님이 남긴 법문집 <일기일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산문집 <무소유> <아름다운 마무리> 등에서 스님이 설파한 행복론, 바람직한 신앙생활, 나눔의 중요성 등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스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보고, 읽어내기 위함이다.
- 바람직한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집안 살림도 제쳐놓은 채 절이나 교회를 자주 다니는 신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보다도 마음 씀이 훨씬 못한 경우가 많아요. 절에서 부처님 법문을 듣고 가르침을 이해했다면 그대로 일상의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그대로 실천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진정한 불자인지, 가짜 불자인지 판명됩니다."
스님은 2007년 3월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 "이상적인 도량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그대가 있는 바로 그 자리"라고 강조했다.
- 종교간 갈등도 가끔 있습니다만.
"인류는 각기 다른 종교와 국가, 혹은 이념의 집단을 만들어 왔습니다. 각자 자기가 속한 것만이 최고이며 진리라 믿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만을 절대시하기 때문에 너와 나의 분리가 생깁니다. 적대 의식과 벽이 생기는 것이죠. 같은 시대, 한 장소에 살면서도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등을 돌립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 종교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종파적인 곁가지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람을 갈라놓는 종교는 좋은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종교가 아닙니다."
- 모두가 행복하길 원합니다. 진정 행복을 누리기 위한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는 그다지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분수에 만족치 않고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허욕을 부리기 때문에 결국은 불행해지죠.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망은 때로 사람을 더 나은 길로 이끄는 추진력이 되고, 삶에 탄력을 주기도 하죠. 그러나 탐욕은 인간을 옴짝 못하게 얽어매고 병들게 합니다."
- 글을 쓰시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해인사 선방에서 수행하던 시절에 팔만대장경을 모셔둔 장경각 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려오시면서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려오신 곳에 있습니다' 했죠. 그랬더니 할머니는 '아, 그 빨래판 같은 거요'라고 합디다. 우리 불교가 옛것만 답습하고 제도권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팔만대장경 말씀도 한낱 '빨래판 같은 것'에 불과할 뿐임을 알았죠. 살아있는 언어로 불교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 죽음은 무엇입니까.
"죽음을 두려워 마십시오.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자체가 괴로운 것입니다."
"죽음은 하나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육체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육체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도 삶의 한 모습이기에 거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죠."
- 스님은 평소 거대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일상의 소중함을 늘 강조하십니다.
"집에 단풍잎 몇 장 따다가 수반 같은 곳에 띄워보세요.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고 가을의 정취가 집안까지 들어옵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삶이 팍팍해집니다. 그것이 하나의 삶의 운치이고 물기입니다. 아름다움을 가꿔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둘레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 삶을 꽃피워야 합니다."
- 파장을 낳은 사회적 발언도 하셨는데….
"근래에 와서 이 땅의 생태계가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허물고 파헤쳐져 피 흘리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 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끔찍한 재앙입니다. 어떤 정책과 권력으로도 이 땅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 국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영혼이고 살이고 뼈입니다.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신성한 땅입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파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놓으면 결코 살아있는 강이 아닙니다."
- 나눔의 중요성도 늘 강조하셨는데요.
"좋아하는 영어문장에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말이 있어요.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의미로 화엄경 법성게에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의 세계입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웃에게 빛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그 자신만 아름다움을 지니지 말고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서 빛이 되라는 말입니다. 메마른 들녘에 한송이 풀꽃이 피어남으로 해서 온 들녘에 봄 물결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부유하고 지위가 높을수록 그 부와 지위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단지 내가 노력해서 번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어떤 사람은 피나게 노력해도 축적이 안되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노력을 안해도 축적이 됩니까. 그 배후의 소식을 알아야 합니다." (도재기 기자 경향신문)
* 첨가
"지금의 위기는 인간이 분에 넘치는 풍요의 환상을 깨어나라는 뜻으로, 잘못된 습관과 사고를 전환해 사람답게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성장위주의 정책과 무절제하고 부도덕한 경제팽창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는 천연자원을 착취하고 미래세대의 몫을 빼앗는 나쁜 행위입니다."(2008년 12월14일, 길상사 창건 11주년 기념법회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나에게는 맑은 복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책이 있습니다. 마음의 양식이 나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둘째, 차(茶)가 있습니다. 출출할 때 마시는 차는 제 삶의 맑은 여백입니다. 셋째, 음악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건전지로 듣습니다만 음악이 삶에 탄력을 주고 있습니다. 넷째, 채소밭이 있습니다. 채소밭은 제 일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내 삶을 녹슬지 않게 늘 받쳐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적한 삶을 누리고픈 꿈이 있습니다. 밭을 일구면서 살고자 하는 꿈, 이러한 꿈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언제 현실적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일상에 찌들지 않는 꿈을 가집시다."(2008년 10월19일, 길상사 법회에서)
“생로병사란 순차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뜻밖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차례를 거치지 않고 생에서 사로 비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삶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인생을 하직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008년 11월 출간된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출처] : 뷰스앤뉴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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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어록
법정 스님은 생전에 저서와 법회를 통해 많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해인사 수행시절 한 할머니가 팔만대장경을 그 빨래판 같은 것 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듣고 불교가 제도권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평생을 지켜온 무소유의 가치관을 30여권의 저서와 많은 법회 강론을 통해 설파했다.
"가진 것과 행복은 물론 상관관계가 있겠지만, 행복은 결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서 향기처럼 우러나는 것이다. 횡재를 만나면 횡액을 당하고 액을 불러들이기 쉽다. 돈이라는 것은 혼자만 오는 게 아니라 꼭 어두운 그림자가 같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정한 부자인가. 가진 것이 많건 적건 덕을 닦으면서 사는 사람이며, 덕이란 이웃에 대한 배려이며 이웃과 나눠가지는 것.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이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2005년 12월 길상사 창건 8주년 기념법회에서)
"맑은 가난(청빈) 이란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갖고자 할 때 갖지 못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가난의 정신입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불황이라고들 얘기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진정한 가난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서 매일 3만5000명 정도가 굶어죽고, 세계인구의 6분의 1인 10억명 정도가 하루 1달러로 연명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웃을 먼저 돌아보자."(2004년 12월 길상사 창건 7주년 기념법회) [정재욱 기자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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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남긴 주요 어록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은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등 여러 권의 산문집과 법문을 통해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깨달음을 전하는 주옥같은 말을 남겼다. 특히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는 말은 스님이 설파하던 '무소유'의 정신을 압축한다. 1997년 길상사 창건 당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로 시작하는 창건 법문도 이러한 무소유 정신과 맞물려 널리 회자됐다. 그런가 하면 말년인 지난 2008년 낸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에서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마지막 모습까지 귀감이 되기도 했다.
다음은 법정스님의 주요 어록.
▲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무소유' 중)
▲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산방한담' 중) → 네티즌이 뽑은스님 주요어록
▲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 → 네티즌이 뽑은스님 주요어록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버리고 떠나기' 중) → 네티즌이 뽑은스님 주요어록
▲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홀로 사는 즐거움' 중) → 네티즌이 뽑은스님 주요어록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산에는 꽃이 피네' 중)
▲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산에는 꽃이 피네' 중) → 네티즌이 뽑은스님 주요어록
▲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 → 네티즌이 뽑은스님 주요어록
▲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 네티즌이 뽑은스님 주요어록
▲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있으면 합니다.(1997년 12월 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 네티즌이 뽑은스님 주요어록
▲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아름다운 마무리' 중)
▲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아름다운 마무리' 중)
▲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도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 중) [고미혜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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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장가’ 법정 스님 주요 어록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다”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대표적 명문장가로 손꼽힌다. 경전 공부와 스님으로서의 치열한 수행, 방대한 독서 등을 바탕으로 한 스님의 법문은 '사자후'에 다름없었다. 산문은 독자들의 정신적 허기를 꽉 채우며 출간될 때마다 큰 관심을 불렀다. 스님의 법문과 산문에서 주요 어록들을 뽑았다.
"꽃, 우리 둘레에 피는 이 가슴 벅찬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라. 이건 놀라운 신비다. 꽃의 피어남을 통해서 인간사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가장 아름답고 맑은 요소를 얼마만큼 꽃피우고 있는가? 꽃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도 되돌아봐야 한다."
"습관적으로 절이나 교회에 다니지 마세요. 왜 절에 가는지, 왜 교회에 가는지 그때그때 스스로 물어서 어떤 의지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삶이 개선되죠. 삶을 개선하지 않고 종교적 행사에만 참여한다고 해서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과거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편리해졌지만 우리 내면은 그때보다 훨씬 빈곤해졌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꺼린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결코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가 형편없이 전락했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순물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불교 수행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자기 형성의 길인 지혜의 길, 이웃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의 길인 자비의 길입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결여되면 불교도, 종교도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수행한다면 그것은 반쪽 수행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타인에 대한 보살핌이 동시에 따라야 합니다."
(도재기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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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어록
관련기사 법정 스님은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 이래 매년 봄, 가을에 가진 대중 법문을 비롯해 국내외 법회와 초청 강연 등에서 생생한 목소리로 무소유와 생명, 나눔의 삶을 설파했다. 세속적 삶을 일깨우는 죽비소리였던 스님의 말씀을 옮긴다.
- 풍요는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와 올바른 정신을 준다.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됐으면 한다.(1997년 12월 길상사 창건 법문)
- 9ㆍ11테러는 업(業)의 파장이다. 할리우드 영화 등 난무하는 폭력물에서 테러 집단이 배운 것이다. 지금까지의 업이 지금의 나를, 오늘의 우리를 형성하고 있다.(2001년 11월 뉴욕 불광사 초청 법회)
- 경제 논리, 개발 논리로 자연이 말할 수 없이 파괴돼 간다. 대지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곧 자기에게 상처 입히는 일임을 전혀 모르고 있다. 모체가 앓고 있는데, 그 지체가 어찌 성하겠나.(2003년 10월 대구 초청 강연)
- ‘용서가 있는 곳에 신이 계신다’는 말을 기억하라. 용서는 저쪽 상처를 치유할 뿐 아니라 굳게 닫힌 이쪽 마음의 문도 활짝 열게 한다.(2004년 4월 길상사 봄 정기법회)
- 세상을 하직할 때 무엇이 남겠나. 집, 재산, 자동차, 명예, 다 헛것이다. 한때 걸쳤던 옷에 지나지 않는다. 이웃과의 나눔, 알게 모르게 쌓은 음덕, 이것만이 내 생애의 잔고로 남는다.(2006년 부처님오신날 법회)
- 행복의 비결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아는 데 있다. 자기 그릇을 넘치는 욕망은 자기 것이 아니다. 넘친다는 것은 남의 몫을 내가 가로채고 있다는 뜻이다.(2008년 8월 길상사 하안거 해제 법회)
- 이 봄날에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각자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며 가꾸어 온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치길 바란다.(2009년 4월 길상사에서 가진 마지막 법회)
-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은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2008년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 흔히 마음을 맑히라고, 비우라고 한다. 마음이란 말이나 관념으로 맑혀지고 비워지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선행을 실천했을 때 마음은 맑아진다. 선행(善行)이란 다름 아닌 나누는 일이다. 내가 잠시 맡아 가지고 있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1994년 강연)
- 텅 빈 항아리와 아무것도 올려 있지 않는 빈 과반(菓盤)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내 마음도 어느새 텅 비게 된다.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엇인가를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이 충만감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하던가. '텅 빈 충만'의 경지다."(〈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 먼 길을 가려면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지니기에는 짐이 되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2005년 10월 운문사)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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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福 그리고 걷기, 법정스님 메시지
11일 입적한 서울 성북2동 길상사 회주 법정(78) 스님의 생전 법문은 곧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
복(福)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험난한 세상에서 복이 우리를 받쳐주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복 받을 행동을 해야 하고, 복 받을 마음을 지녀야 한다. 순간순간의 자기 행동이 복을 받을 만한 언행인가 되돌아보고 스스로 살펴야 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살기도 죽기도 한다. 또한 시간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친구를 만나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을 만들었다면 시간을 살리는 것이고 남의 흉이나 본다면 시간을 죽이는 일이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잘 쓰면 살리는 것, 귀중한 시간을 무가치하게 흘려버리면 죽이는 것이 된다."
살아있다면 걸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삶을 내딛습니다. 발걸음을 떼어 놓고 또 걷고 걷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짊어지고 온 발자국은 없습니다. 그냥, 가 버리면 그만인 것이 우리 삶이고 세월입니다. 한 발자국 걷고 걸어온 그 발자국 짊어지고 가지 않듯 우리 삶도 내딛고 나면 뒷발자국 가져오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냥 그냥 살아갈 뿐…. 짊어지고 가지는 말았으면 하고 말입니다. 다 짊어지고 그 복잡한 짐을 어찌 하겠습니까. 그냥 놓고 가는 것이 백번 천번 편한 일입니다. 밀물이 들어오고 다시 밀려 나가고 나면 자취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애써 잡으려 하지 마세요. 없어져도 지금 가고 있는 순간의 발자국은 여전히 그대로일 겁니다. 앞으로 새겨질 발자국, 삶의 자취도 마음 쓰지 말고 가세요.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가는 겁니다. 우린 지금 이 순간 그냥 걷기만 하면 됩니다." ('그냥 걷기만 하세요')
무념무상 땅을 밟으라는 법정의 주문은 '무소유'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산문 '걷기 예찬'을 통해서도 이 생각을 전했다.
"사람이 일반 동물과 크게 다른 점은 꼿꼿이 서서 두 발로 걷는 기능에 있다고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사람들은 자동차에 너무 의존하면서 직립보행의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내 자신의 경우만 하더라도 먼길을 오고 갈 때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는 걷는 일보다 타는 일이 더 많다. 그 때마다 내 몸이 퇴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 뉴시스 윤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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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가로되…
신동립의 잡기노트 <174>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법정 스님에게 물어봄 직하다. 11일 입적한 고승은 매우 고맙게도 아주 많은 책을 남겼다.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이다. 지난해에는 1992년 8월부터 2009년 4월까지의 법문을 모은 '일기일회'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펴냈다. 법정의 마지막 산문집은 '아름다운 마무리'다.
◇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와 떠남, 이별 이야기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22~26쪽)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항상 배우고 익히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묵혀 두지 않고 거듭거듭 새롭게 일깨워야 한다. 이런 사람은 이다음 생의 문전에 섰을 때도 당당할 것이다." (78~90쪽)
"돌이켜 보면 언제 어디서나 삶은 어차피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순간들을 뜻있게 살면 된다. 삶이란 순간순간의 존재다." (41쪽)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57쪽)
◇병상에서의 사유
"어쩌다 건강을 잃고 앓게 되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이 그저 그런 것인지 저절로 판단이 선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취가 훤히 내다보인다. 값있는 삶이었는지 무가치한 삶이었는지 분명해진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33쪽)
"흔히 이 육신이 내 몸인 줄 알고 지내는데 병이 들어 앓게 되면 내 몸이 아님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내 몸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면서 나는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인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 앓게 되면 철이 드는지 뻔히 알면서도 새삼스럽게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나를 에워싼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으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39~40쪽)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 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162쪽)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도 그 사람다운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이웃들은 거들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찍부터 삶을 배우듯이 죽음도 미리 배워 둬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들 자신이 맞이해야 할 엄숙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164쪽)
◇진정한 부와 행복에 이르는 방법
"내 삶을 이루는 소박한 행복 세 가지는 스승이자 벗인 책 몇 권, 나의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밭, 그리고 오두막 옆 개울물 길어다 마시는 차 한 잔"(1쪽)이라는 법정은 "늘 모자랄까 봐 미리 준비해 쌓아 두는 마음이 곧 결핍"(71쪽)이라며 두 개를 갖게 되면 하나만을 지녔을 때의 그 풋풋함과 살뜰함이 소멸돼 버린다고 가르친다. 동시에 소유와 발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세상이 잘못 알고 있는 진정한 가치와 부의 개념을 바로 잡는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을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인생이 비참해진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그리고 그 그릇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123~124쪽)
◇이웃에 대한 배려, 나눔과 공덕의 의미
"살아오면서 이웃으로부터 받은 따뜻함과 친절을 내 안에 묵혀 둔다면 그 또한 빚이 될 것이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만큼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때그때 만나는 이웃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로 집약될 수 있다. 남보다 앞질러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흐름을 함께 이룰 수 있어야 한다."(86~87쪽)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는 일에 보다 적극성을 띠려고 한다. 내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원래 내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몸도 내 것이 아닌데 그 밖의 것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는가." (86쪽)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다. 사람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보다 따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만나는 대상마다 그가 곧 내 '복밭'이고 '선지식'임을 알아야 한다. 그때 그곳에 그가 있어 내게 친절을 일깨우고 따뜻한 배려를 낳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110쪽)
"세상살이란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마련인데 주고받음에 균형을 잃으면 조화로운 삶이 아니다. 주고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말 한 마디, 몸짓 한 번, 정다운 눈길로도 주고받는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되고 차디찬 마음이 차디차게 전달된다. 마지못해 주는 것은 나누는 일이 아니다. 마지못해 하는 그 마음이 맞은편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덕이란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이웃에게 전해지는 그 울림에 의해서 자라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 자신의 일몰 앞에 설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일몰 앞에서 삶의 대차대조표가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그때는 이미 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다가 간 자취를 미리 넘어다 볼 줄 알아야 한다."(215쪽)
◇나이 듦의 의미
"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는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탐구하는 노력을 쉬게 되면 인생이 녹슨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자신의 분수에 맞게 제대로 살고 있다면 노후에 대한 불안 같은 것에 주눅 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순수한 시간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어야 한다." (15~16쪽)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젊은 시절이나 다름없이 생활의 도구인 물건에 얽매이거나 욕심을 부린다면 그의 인생은 추하다. 어떤 물질이나 관계 속에서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 인생의 황혼기는 묵은 가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몸은 조금씩 이지러져 가지만 마음은 샘물처럼 차오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무가치한 일에 결코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항상 배우고 익히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묵혀 두지 않고 거듭거듭 새롭게 일깨워야 한다. 이런 사람은 이다음 생의 문전에 섰을 때도 당당할 것이다." (89~90쪽)
◇소박하고 맑은 오두막에서의 삶
"어느 날 아침 내 둘레를 돌아보고 새삼스레 느낀 일인데, 내 둘레에 무엇이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았다. 차와 책과 음악이 떠올랐다. 마실 차가 있고, 읽을 책이 있고, 듣고 즐기는 음악이 있음에 저절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오두막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구나 싶었다. 차와 책과 음악이 곁에 있어 내 삶에 생기를 북돋아 주고 나를 녹슬지 않게 거들어 주고 있음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오두막 살림살이 중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들라면 읽고 싶은 책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쾌적한 상태에서 읽고 있을 때, 즉 독서삼매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내 영혼은 투명할 대로 투명해진다."(119쪽)
"자다가 저절로 눈이 떠진다. 어김없이 새벽 한 시에서 한 시 반 사이. 이때 내 정신은 하루 중에서도 가장 맑고 투명하다. 둘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개울은 두껍게 얼어붙어 흐름의 소리도 멈추었다. 자다가 뒤채는지 이따금 뜰에 가랑잎 구르는 소리만 바스락거릴 뿐. 이것은 적적 요요한 자연의 본래 모습이다. 창문을 열면 새벽하늘에 별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다. 밤을 지키는 이런 별들이 없다면 이 우주는 너무 적막하고 삭막할 것이다." (133쪽)
"오후로는 대지팡이를 끌고 마른 숲길을 어슬렁거린다. 묵묵히 서 있는 겨울나무들을 바라보고 더러는 거칠거칠한 줄기들을 쓰다듬으며 내 속에 고인 말들을 전한다. 겨울나무들에게 두런두런 말을 걸고 있으면 내 가슴이 따뜻하게 차오른다."(134쪽)
"머리 무겁고 귀찮은 철 지난 옷가지들을 치우고 겨울철에 걸칠 옷들을 꺼내 놓았다. 중노릇 중에서 가장 귀찮고 머리 무거운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철따라 옷가지를 챙기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누더기 한 벌로만 한평생을 지냈다는 옛 수행자의 그런 저력이 부럽고 부럽다." (144쪽)
"산중에서 홀로 사는 우리 같은 부류들은 뭣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함께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단박에 해치울 일도 자꾸만 이다음으로 미루는 타성이다. 그때 그곳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그날의 삶이다. 그와 같은 하루하루의 삶이 그를 만들어 간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없다.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145쪽)
◇'일기일회'에 담긴 10대 메시지
▲언젠가 세상에 없을 모두를 위하여
"삶에서 가장 기특하고 기억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놀라운 신비이고 가능성이다. 모든 것은 삶에서 시작되고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슬픔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56쪽)
"앓으면서 생각했다. '그날그날을 즐겁게 살자.'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오늘 우리가 만나서 이렇게 마주 앉아 오랜만에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지만 내일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루하루를 잘 살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과 작별할 것이다." (84~85쪽)
"살 만큼 살다가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 무엇이 남는가? 홀로 있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평소에 지은 업을 가지고 간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평소에 지은 업만 그림자처럼 따라간다. 하루하루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과 행위를 하는가가 곧 다음의 나를 형성한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스스로가 다음 생의 자신을 만들고 있다." (173~174쪽)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난다. 싫든 좋든 찾아오면 받아들여야 한다. 피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의 현상이다. 죽음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1막의 끝이다. 2막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무언가 맺어짐이 있어야 한다. 죽음을 어두운 것으로, 괴로운 것으로,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매듭을 짓는 일이다. 영혼은 태어나거나 죽지 않는다. 본래 그렇게 있는 것이다. 늘 인연 따라 새로운 몸을 받았다가 버리고 또다시 받을 뿐이다. 죽음도 살아가는 모습으로 생각하라. 다음 생은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대신 순간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새롭게 챙기라." (289~290쪽)
"내일 죽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남기겠는가? 한번 정리해 보라. 당장 내일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때가 온다. 저마다 섣달 그믐날이 온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이런 기적 같은 삶을 헛되이 보낸다면 후회할 때가 온다. 죽음을 어둡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삶의 한 모습이다. 삶의 한 과정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무의미해진다.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306쪽)
"언제 어디서 자기 생의 섣달 그믐날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는 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모든 하루를 자기 생애 최후의 날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미루면 후회가 남는다. 그날 할 일은 그날 하면서, 마치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후회 없이 살라는 것이 앞서 간 모든 사람들의 교훈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때를 아무렇게나 보내서는 안 된다. 그 한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313쪽)
▲삶은 길고도 힘든,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수행의 길
"내 마음이고 내가 하는 생각이지만 삶을 통해 그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갖는가가 중요하다. 생각을 밝게 가지면 내 삶이 밝아지고, 무언가에 휩쓸려 한순간 생각을 어둡게 가지면 삶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진다. 마음은 먼 데서 찾아지지 않는다. 내 안에 늘 깃들어 있다. 우리가 마음을 밖에서 찾고, 다른 대상에서 찾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다.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77쪽)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삶이 학교이고 배움이다. 우리는 그 목적을 위해 이곳에 왔다.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배우게 된다. 그때 삶의 묘미를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순간순간 살고 있다. 이 매 순간을 깨어서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또 사는 일 자체가 즐겁고 기뻐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도 매듭이 풀리고 더 깊어질 수 있다." (87쪽)
"기도하고 수행하는 도량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이 곧 도량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이나 일터가 진정한 도량이 되어야 한다. 어수선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분별과 집착을 떠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곳이면 모두 도량이다. 이상적인 도량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그대가 있는 바로 그 자리!" (130쪽)
▲소유의 의미와 진정한 부자되는 법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 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63~64쪽)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자연은 우리가 필요한 만큼 공급하지만, 분수에 넘치는 탐욕 앞에서는 궁핍해진다. 어떤 물질의 더미 앞에서도 우리는 충만해질 수 없다.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야 행복의 움이 튼다. 물질은 한때에 불과할 뿐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행복은 조화로운 삶에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알맞은 상태, 자기 분수에 맞는 상태이다." (116쪽)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포만 상태는 곧 죽음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 내고 있다. 이것들은 우리 영혼에 공해와 같다. 이 생각 저 생각 온갖 근심을 미리 가불해서 쓰느라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 결과 왜소하고 무기력해져서 인간으로서의 기상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때일수록 본질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찮은 생각을 제쳐 두고 삶의 본질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122~124쪽)
▲삶에 다가온 고난의 의미
"불행도 행복도 피하려 하지 말고,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흔히 세상 밖 어딘가에 천국이 있을 거라 믿고 있지만, 바로 이 현실에서 천국을 이룰 수 있지 이곳을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번뇌 밖에 깨달음이 있지 않다. 일상의 삶을 떠나 열반이 있는 것이 아니다." (34~35쪽)
"때때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라. 자신이 겪고 있는 행복이나 불행을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행복과 불행에 휩쓸리지 않고 물들지 않는다. 이 세상은 참고 견뎌 나가야 하는 사바세계이다. 거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흘러간다면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결과는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어려움을 모르게 되고, 삶에서 영적인 깊이가 사라진다." (39쪽)
"어려운 일 없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려운 일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것이 이 삶이다.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남들은 앓는데 나만 앓지 않는다면 더없이 오만해진다. 이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다 병을 앓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은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86쪽)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삶에 아름다움이 없으면 너무나 삭막하고 건조하다. 오늘 우리들은 돈과 관계된 것에만 눈을 파느라, 경제 생각만 하느라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을 등지고 산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삶의 기쁨이고 행복에 이르는 길목이다. 아름다움을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들 삶이 아름다움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아름다움이 그 삶을 받쳐 주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90쪽)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아무리 퍼내도 다함이 없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내 안의 샘에서 아름다움이 솟아나도록 하라. 남과 나누는 일을 통해 수시로 자신을 가꾸라. 나눔의 삶을 살아갈 때 내 안에 들어 있는 자비의 아름다움이 샘솟듯 생겨난다. 아름다움은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다." (95~96쪽)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지내지 말라. 이 가을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일기일회, 생애 단 한 번뿐인 가을이다. 누구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이 가을날, 그저 대상만 보고 즐길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샘솟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남과 나누는 데서 움이 튼다." (96쪽)
"마음의 문을 열고 보면 어디에든 아름다움이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둘레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 삶에서 꽃피어 나게 하라. 그래야 그 삶이 아름다워진다. 종교적인 생활의 꽃은 마치 모든 꽃이 지고 난 다음에 피는 차꽃 같은 것이다. 남들이 시시하게 여기고 돌아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한다." (310~311쪽)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본질적인 삶의 의미
"병을 심하게 앓으면 모든 게 시들해진다. 내 몸조차도 주체스러울 때가 있다. 그 밖에 책이며 찻그릇이며 이것저것 챙겼던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해진다. 평소에는 거기 얽매여 있으니까 소중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물음을 던지게 된다. 어떤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 어떤 것이 본질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비본질적인 것인가?" (64~65쪽)
"우리가 살 만큼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하며 망설일 것 없이, 내려놓는 일을 미리부터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65쪽)
"누구나 자기 삶에 개성이 있어야 한다. 일상의 삶은 무료하다.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자기 삶을 보다 심화시키기 위해 비본질적인 것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진정한 내면이 활짝 꽃피어 날 수 있다. 사소한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크게 생각하라." (109쪽)
"부처님은 어디서 왔는가? 이 꽃과 잎과 새들은 어디서 오는가? 이 나무와 공기와 구름은 어느 곳에서 오는가? 별과 모래와 행성들은 어느 곳에서 오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다시 한 번 묻는다. 부처님은 어디서 왔는가? 무엇을 위해 왔는가? 각자 자신의 일로 물으라." (225쪽)
▲나는 내 한 몸이 아니다, 공생과 나눔의 의미
"공덕이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베푼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말 한 마디, 눈빛 하나도 공덕이 되어야 한다. 물질이 없어도 맑은 눈빛, 다정한 얼굴, 부드러운 말을 나눌 수 있다." (151쪽)
"베푸는 것을 수직 관계로 생각하지 말라.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수평적으로 나누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은혜를 입고 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은혜를 입으며 살아간다. 그런 도리를 안다면 스스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나누어 가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길이다." (153~154쪽)
"살 만큼 살다가 작별할 때 한 생애에서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도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것은 본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에 의해 평가된다. 생전에 그가 얼마나 많은 존재와 세상에 자비심을 베풀었는가, 선행을 했는가, 덕행을 쌓았는가가 결정한다. 결국 한 생애에서 남는 것은 얼마만큼 사랑했는가, 얼마만큼 나누었는가 뿐이다. 그 밖의 것은 다 허무하고 무상하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227~228쪽)
"나는 내 한 몸이 아니다. 온 세상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많은 인연들이, 여러 조건과 상황들이 우리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못 생각을 하거나 함부로 행동하면 내 한 몸에 그치지 않고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 사람이 잘 살면, 그 기운이 온 우주에 긍정적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잘못 살면, 그 사람을 위해 거들고 있는 온 우주에 나쁜 기운을 퍼트리게 된다. 이것이 이 세상의 구조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홀로 독립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244쪽)
▲어제도 오늘도 없고 늘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
"진리는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삶 역시 그렇다. 다음 순간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한 번 숨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굳어지는 것이 육신이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내일은 없다. 어제도 없고 늘 지금이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179~180쪽)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순간순간 그날그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익히면서 사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질 것이다. 개인의 삶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된 사람들의 삶도 달라진다. 누가 나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만들어 간다." (209쪽)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에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를 묻지 말라. 이미 지나가 버린 세월이다. 그것은 전생의 일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곳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이다." (269~270쪽)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 순간이 마음을 맑히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한숨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마음을 맑히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 한순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한순간이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317쪽)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다, 날마다 새로운 날
"언제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날그날을 새날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롭게 움틀 수 있다." (74쪽)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다. 새로운 날이다. 묵은 시간에 갇힌 채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아야 한다. 내 마음이 활짝 열리면 닫혔던 세상의 문도 따라서 활짝 열리게 된다. 열린 세상에서 열고 살아가라." (263쪽)
"새잎이 펼쳐지는 이 눈부신 계절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 안에 잠재된 좋은 기운이 새잎처럼 펼쳐질 수 있다.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설령 내 안에 아무리 좋은 잠재력의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잠들어 버리고 만다. 무거운 짐을 부려 놓고 가볍게 살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살라." (291쪽)
▲ 침묵과 자기 존재의 시간
"지난여름, 내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거웠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침저녁으로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묵묵히 앉아 있던 그 시간이다. 책 읽고 밖에 나가 일하는 시간은 부수적인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개울물 소리에 귀를 맡기고 조용히 앉아 있을 때가 가장 기쁜 시간이다. 이때는 순수한 자기 존재의 시간, 자기 충전의 시간이다. 선의 기쁨으로 밥을 삼는 이 같은 자기 중심의 시간을 통해 이 험난한 세상을 무난히 헤쳐 나갈 수 있다." (215쪽) [서울 뉴시스 문화부장 신동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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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법정 스님 입적 추도사 및 글
아미타 세상서도 ‘빛’ 돼주시길
하루 전에 몰려왔다가 사라진 꽃샘추위로 말미암아 얼어 시들어지고 오그라들어버린 매화·동백꽃·산난초꽃·산수유꽃들을 둘러보며 안타까워하다가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거기에 시퍼런 허공이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 철쭉나무·영산홍나무·살구나무·진달래나무 등 모든 푸나무들이 바야흐로 향기로운 봄꽃들을 화사하게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이때 어디로 떠나고 계십니까?
서재로 들어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쳐다본 그 시퍼렇게 깊은 허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스님께서 가시는 곳은 아마 그 허공일 터이지요. 우리들이 생겨난 그 시원인 허공 말입니다. 스님께서는 저에게 있어서 하나의 거대하고 그윽한 거울이었습니다. 헐거운 옷차림을 한 채 환혹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저의 얼굴과 몸짓을 늘 비추어보고 저를 바로잡는 그윽한 거울 말입니다.
스님께서는 저를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풀같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는 꽃그늘 같은 막이었습니다. 군사독재가 세상을 흉흉하게 했을 때 스님께서 기고한 글들은 불안한 저를 늘 안도하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군사독재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가슴에 생명의 존엄성을 심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책잡히지 않을 글들로써 하실 이야기들을 다 하셨습니다. 명동성당에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다면 산사에는 법정 스님이 계셨으므로 겁 많은 우리들은 움츠러든 가슴을 펴고 숨을 돌릴 수 있었고, 희망을 가지고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무소유의 정신, 버리고 떠나기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탐욕으로 인해 앙당그러지고 방황하는 삶을 바로잡아주는 길라잡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누군가가 화분에 담겨 있는 값비싼 난을 선물하자 그것을 되돌려 주었다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그 말은, 저의 정수리를 철퇴로 내려치는 듯했습니다. 종내 책임지지도 못할 인연을 함부로 맺고,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잃어버리는 삶을 살아온 저는 스님을 스승으로 여기고 저를 교정하며 살아왔습니다.
스님 생전에 저는 감히 스님을 직접 친견하려고 들지 않았는데, 그것은 스님께서 제 속에 들어와 계시는 비로자나부처님처럼 늘 저의 속에서 빛이 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는 스님의 고결한 순수를 외포(畏怖)스럽게 여긴 때문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종교와 종교 사이의 갈등대립의 벽을 넘어 다른 종교인들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고 화해하는 맑고 향기로운 삶을 내내 실천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저를 그윽하게 비쳐주는 항성 같은 깨달음의 빛과, 늘 비쳐보면서 제 비뚤어진 삶을 바로잡곤 하던 거대한 거울을 잃어버렸으므로 슬픕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저와 같은 슬픔 속에 빠진 사람이 한없이 많을 터입니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던 스님은 이승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그렇지만,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하고 노래한 만해 선생의 시 구절처럼 저는 스님을 보내드리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미타 세상에 가서도 이승의 고달픈 중생들을 위하여 그윽하고 향기로운 빛이 되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스님, 부디 열반 잘하시고, 극락에서 편히 쉬시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승원|소설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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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이해인 수녀의 법정스님 추모글
법정 스님께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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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 땅에 더 많은 법정으로 태어나 주십시오"
主님, 큰스님 법정의 영혼을 받으소서
가톨릭 성당에서 신자인 저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빌고 말았습니다
처음으로 입다문 채 온 가슴으로 불교의 스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먹물 옷깃의 향기가 제게 이토록 깊게 스민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해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리워서
스님의 입적 소식은 다시 큰 슬픔이 되었습니다
법정을 읽고 저의 종교에 더 순복하게 되었고
제 삶을 돌아보아 옷깃을 여미었고
어쭙잖게 써온 글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시어 감사했습니다
손수 지은 외딴 오두막에 방석 하나 호롱불 하나로
무소유의 참자유와 참행복을 보여주신 삶에서
가진 게 많음을 깨달아, 무한 부끄럽고 또한 몹시 부럽기도 했습니다
삶이 단순해야 광활한 정신공간을 가질 수 있다고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놀라운 신비라는 설법 등
쓰신 글마다 풍겨나는 佛性의 고아하고 드높은 향기에
佛敎는 微笑의 宗敎라고 여러 편의 詩도 쓰게 되었습니다
함께 보여주신 종교 간 화합 모습에
두 종교의 신자들은 얼마나 안도하며 자유로워졌는지요
이렇게 법정스님은 늘 우리 김수환 추기경님을 떠올려 주었습니다
人間의 영역에서 神의 영역을 보여주신 두 분의 聖職者로
이 땅의 중생들은 기쁘고 감사하며 자랑스러웠습니다
유신철폐와 환경운동 등 시대의 아픔을 돌아보아 주셨음이
번뇌에 빠진 중생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 되뇌게 됩니다
"모든 저서는 절판시키고
일체의 장례의식을 하지 말고
평소 승복 그대로 다비하고 사리도 찾지 마라"
유언의 목탁소리까지 중생의 가슴을 오래오래 울릴 것입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어, 이 땅에 더 많은 법정으로 다시 태어나 주십시오
主님! 법정 큰스님을 품어주소서. 삼가 합장기도 바칩니다
[유안진 시인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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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가 곁에 있음에 감사 이땅에, 부디, 다시 오시길…
흰 눈 덮인 낮은 한옥 지붕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볍게 덮였구나.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붕의 살갗처럼 눈이 희구나.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삼월에 내린 눈 위로 '봄 햇살'이라고 할, 꼭 그런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아침부터 내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무슨 일이 있으려는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안부를 넣었다. 건널목 조심스레 건너다니고, 차도 쪽에 붙어 걷지 말고, 밥은 항상 맛있게 먹고…. 자주 안 하는 잔소리를 하게 된 날이다.
김선우 시인
창밖으로 보이는 눈 덮인 지붕들이 어제보다 조금 가벼워져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나. 햇살에 몸이 닿으며 아지랑이처럼 화하는 눈의 입자들이 허공을 촉촉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나. 법정 스님 입적, 이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내가 참 좋아하는 수녀님이 보낸 메시지였다. 햇살이, 흰 눈을, 건너고 있다. 중얼거리면서 티브이를 틀었다.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속보가 지나간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셨을 때에도 해맑은 햇살 같은 수녀님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후 티브이를 켜 속보를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왕생기원, 이라고 메시지를 보낸 후, 백팔 배를 올렸다.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가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들. 수녀님과 내가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나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연 것도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읽었던 '무소유'는 문고판의 얇은 책이었는데 수녀님이 들고 있는 책은 판형이 달라진 양장본이었다. '무소유'가 세상에 나온 지 퍽 오래되었구나.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오랜 시간을 통과해 여러 세대의 사람들 속에 무소유의 향기를 퍼뜨리고 있는 아름다운 책이 고마웠다. 내가 고등학교 때 '무소유'를 나에게 권해준 둘째언니는 내가 일기장에 '무소유'에 대한 독후감 쓰기를 마친 무렵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기억하지만, 정작 스님께선 한 말씀 하실 것이다. 그 책은 법정의 소유가 아닌데 어찌 법정의 '무소유'냐고. 무소유는 불가의 오랜 수행의 원칙이며 수행자 삶의 중요한 실천 양식이니, 법정의 '무소유' 같은 건 실은 없다! 라고. 그 '없음'을 우리 곁에 자상하게 풀어 보여준 아름다운 책 '무소유'에 감사드린다. 너무 멀리 있는 경전이 아니라 지하철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공원에서도 식당에서도 거리 곳곳 무람없이 펼쳐 한 구절을 짚어갈 수 있는, 무소유가 경전의 엄숙한 얼굴이 아니라 살가운 문학의 형태로 우리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들뛰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덜 소유하려고 하는, 심지어 터럭 하나조차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자 하는 정신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맑은 바람줄기처럼 함께 있어 이 물신의 사회가 여태 아주 끝장나지는 않고 버텨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운하와 4대강 사업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안타까워하시던 법정 스님.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방방곡곡 이 땅이 근래에 와서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성찰을 잊은 개발에 의해 온 땅이 피 흘리고 신음하고 있다"며 가슴 아파하던 스님을 떠올린다. 마지막 병상에서 강원도 눈 쌓인 오두막으로 오고 싶어 하셨다는 전갈을 들으며, 내 눈길 가닿는 강원도 곳곳의 오두막들이 촛불 한 자루씩 밝히는 것을 보고 있다.
왕생기원. 온 산하가 인간의 이기심으로 신음하고 소유의 탐심이 무소유의 청정을 너무도 쉽게 유린하는 이 땅으로 다시 오시길 기원하는 일이 부덕한 것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우리 곁을 떠나는 아름다운 스승들에게 아직도 '천국'이나 '극락'에 안거하시길 기원할 마음이 없다. 이 땅에, 부디, 다시 오시길. 세상 중생의 고통이 사무쳐 혼자만 극락에 안거할 수 없는 자비의 마음이 보살의 연원이라 하였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이미 돌아오기 시작한 당신을 맞으러 봄 햇살, 봄꽃, 봄바다, 봄강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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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을 기리며 / 수경 스님
봄이 오는 한강 가에서 법정 스님의 원적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물도 애통해하는 듯합니다. 얼음 풀린 강물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탁한 물입니다. 4대강 개발의 포클레인 삽날과 굉음은 마음속 통곡마저 삼켜버립니다.
흐린 강물을 바라보며 ‘중노릇’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새겨 봅니다. 법정 스님의 생전 목소리가 살아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생명은 기적이며 축복입니다.” “살아있는 강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합니다. 물줄기를 직선으로 만들고 웅덩이를 파고, 강가를 콘크리트로 막으면 살아있는 강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신륵사 옆 한강 가에 조그마한 법당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여강선원’입니다. ‘강처럼 사는 집’이라는 뜻을 담아 보았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보고자 함입니다. 불자인 저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법입니다. ‘법’이란 글자를 보십시오. 물 수(水)에 갈 거(去) 자를 합한 것입니다. ‘물 흐르는 이치’가 바로 법입니다. 생명의 실상과 자연의 본성이 법입니다. 그런데 저는 살과 핏줄과 같은 관계인 대지와 강을 인위적으로 갈라놓는, 대지의 생살을 헤집는 비극의 현장에 와 있습니다. ‘돈’만 된다면 못할 일이 없는 이 막무가내를 무슨 재간으로 막겠습니까만, 함께 아파하며 통곡이라도 하려고 강가로 나왔습니다.
2년 전 어느 봄날 스님은 길상사에서 대중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 땅은 사람만이 아니라 겉모습만 다른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어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바른 삶의 길입니다. 현 정부의 강 살리기는 방법과 내용이 바르지 못합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생관계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불자로서, 더욱이 비구로서 인간의 탐욕 때문에 곤경에 빠진 생명들과 아픔을 함께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가던 몇 년 전 어느 날 스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어깨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게 중노릇입니다. 이 길이 부처님의 길입니다. 현재 한국 불교가 비불교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이건 아닙니다. 불살생의 정신으로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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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리 다시 만나리
■ 길상사 관음상 조각한 가톨릭 미술가 최종태 교수 추모글
스님 지금은 어디쯤 계십니까. 그날 병상에서 강원도 눈 보러 가고 싶다 하셨지요. 또 한계가 있다 말씀하셨지요. 정말로 시간과 공간을 버리셨습니까. 길상사 떠나실 때 미련이 없으시던가요. 송광사 다비를 보는데 실제가 아닌 환상으로 보였습니다. 정말로 가신 건지 영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오고 가고 하는 것이 어찌 내 마음대로이겠습니까마는 스님,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 사람들 가슴에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법정 스님, 정말 가셨습니까. 우리들의 인연이란 게 이것뿐이던가요. 스님의 향기는 오래오래 남을 것이지만 인정이란 그렇지가 않은 것입니다. 더 좀 계실 일이지 당신만 털고 가시면 될 일입니까. 중생은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것을 스님은 잘 아십니다. 멀리 계셨어도 나는 늘 스님이 옆집에 계시는 것처럼 가슴에 담고 살았습니다.
1970년대 언젠가 우리나라에 민주화 열기가 높을 때 스님께서 명동에 가셨다면서요. 어떤 신부님이 먹물 들인 옷 입은 이가 웬일이시오 하였을 때 그럼 이 옷을 벗고 오면 되겠습니까 하셨다 들었습니다. 그 뒤로 스님은 김수환 추기경님과 특별히 잘 지내셨습니다. 스님은 김 추기경님과 함께 어두운 우리 세상 밝히는 큰 등불이셨습니다. 어쩌면 내 좋아하는 두 분이 꼭 한 해 시차를 두고 가시는군요. 내 일찍이 이렇게 힘든 경우를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스님처럼 깔끔하게 사신 이를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요. 법회 때마다 옆에 좀 있고 싶었지만 스님 보고 싶은 사람들 많아서 내가 자리를 비켜드린 것은 스님이 아십니다. 길상사 나물밥 자주 먹고 싶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스님을 이렇게 서둘러 거두시는 뜻이 무엇인가요. 가시는 마당에 육신에다 아픔을 보탠 까닭은 또 무엇일까요. 아, 스님의 가신 자리는 비어있고 내 마음 어서 추슬러야지 하지만 섭섭한 정 가눌 길이 없습니다.
우리 동갑내기 중에 볼만한 사람 많다 하셨지요. 다 나한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하신 말씀인 것을 내가 잘 압니다. 길상사에 관음상 만들자고 우리가 처음 만났어요.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이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화관(花冠)이라 하셨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병은 무엇인가 물었을 때 정병(淨甁)이라 하셨습니다. 손바닥이 이쪽에서 보이도록 만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었을 때 구고(救苦)라 하셨어요. 나도 짧게 물었지만 스님은 토씨 하나 안 붙이고 외마디 답으로 일러주셨지요. 꽃 관에다 정화수에다 세상고통을 구한다는 그 세 마디 주신 말씀으로 순간에 작품은 다 잡혔습니다. 다음 날로 즉시 나는 흙일을 시작했고 세 시간을 했는데 다 됐다 싶었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뜻밖에도 스님이 받으셨지요. 얼떨결에 다 됐다 했는데 그럼 지금 가보겠다 그러셨습니다. 스님과 내가 그렇게 뜻이 맞아 길상사 절 마당에 관음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억겁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두 손이 잠깐 하나로 만나서 한 형상이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시작이거니 했는데 헤어져야 한다니요. 이것을 어찌 박절한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성모님 닮은 관음상이라 합니다. 내가 천주교 신자라고 해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애칭입니다. 땅에는 경계가 있지만 하늘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종교가 울타리를 허물면 한마당이 될 것입니다.
내가 옛날 불경공부를 했는데 어느 날 성서가 좍 읽혔습니다. 그게 무슨 조화냐고 스님께 물었더니 그때 경을 읽는 눈이 열렸다 하셨어요. 실로 40년 만에 묵은 숙제가 단칼에 풀렸어요. 스님도 아시는 일이지만 지금 어떤 이가 길상사를 주제로 오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절터를 스님께 시주한 보살의 노래가 바탕이 되고 아름다운 대합창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성북동 골짜기 평범한 땅이 성스러운 공간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다 스님의 지혜와 공덕입니다. 스님은 글로 선교를 하셨습니다. 일상의 언어로 보통사람들의 가슴에다 진리의 말씀을 심었습니다. 스님의 글은 우선 맑지요. 먼저 마음을 정갈하게 합니다. 그리고 뜻이 뒤따라옵니다. 정화된 물을 마시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그 물이 어디서 솟아나느냐고 그걸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삼청터널을 지나는데 차 안에서 느닷없이 한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마지막에 ‘목이 마르다’ 하셨는데 그것을 ‘사랑의 갈증’이다 하셨어요.
스님은 번뜩이는 지혜의 가르침으로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 물질문명의 퇴폐 앞에다가 무소유(無所有)라는 큰 경고 말씀을 던졌습니다. 스님의 삶 전체가 휘파람이 되어 이 강산 골짜기마다 메아리칩니다. 이제는 쉬실 때. 스님 법정! 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리 다시 만나리.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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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유산 남긴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을 추모하는 조문객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정 스님은 입적 전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며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스님은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고, 승복 입은 채 다비해주고, 사리도 찾으려 하지 말라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무소유의 철학으로, 올곧은 수행자로, 영혼을 깨우는 문장가로, 종교의 벽을 깨는 관용으로, 일반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스님은 이렇게 다 버리고 떠났다. 그러나 스님의 삶은 한순간도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번뇌하는 사바세계 대중에게 영혼의 울림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유산으로 남겼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은 1954년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송광사, 쌍계사, 해인사 등에서 참선수행했다. 스님은 70년대 한때 민주화 운동에 나선 적도 있지만, 1975년부터 17년 간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서 홀로 살았으며,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속세를 멀리 하고 지낸 수행자였다. 그러면서도 불일암 시절인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달아 내놓았고,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길상사를 개원한 후 매년 봄과 가을 대중법회를 여는 등 대중과 끊임없이 교감했다. 대표 산문집 '무소유'는 179쇄를 거듭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테디셀러가 될 정도로 스님의 탁월한 글솜씨와 맑고 향기로운 글 내용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님은 불교계의 스타이자 큰 어른이었지만 천주교나 개신교, 원불교 등 이웃 종교에 대해서도 담을 쌓지 않았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길상사 개원 법회에 초대하는가 하면, 천주교 신문에 성탄메시지를 기고하고, 명동성당에서 강연을 했다. 스님은 천주교 신문 성탄메시지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끝에 '아멘'이라고 적어 화해와 소통의 정신을 몸소 보여줬다. 그래서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나란히 있는 생전의 사진은 우리 사회를 정신적으로 받쳐주는 두 어른의 상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절감하게 한다.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길을 내달려온 한국 사회는 돈과 물질, 성공을 좇아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서로 양보 없이 싸워 사회 갈등이 극심하고, 사람들의 영혼은 황폐해져가고 있다. 사찰 주지 한 번 하지 않고, 무소유의 삶을 산 법정 스님의 빈소에 추모객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스님이 가졌기 때문이리라. 스님은 다 버리고 떠났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맑고 깨끗한 무소유의 정신을 남겼다. "세상을 하직할 때 무엇이 남겠나. 집, 재산, 자동차, 명예, 다 헛것이다. 이웃과의 나눔, 알게 모르게 쌓은 음덕, 이것만이 내 생애의 잔고로 남는다"는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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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茶毘) 유언
적멸보궁(寂滅寶宮)은 다비(茶毘·불교식 화장)를 치른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석가모니는 8곡4두(八斛四斗), 즉 여덟섬 너말의 사리를 남겼다고 <열반경>은 전한다. 사리는 석가모니 등 성자의 유골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불교에서는 오랜 기간 수행한 공덕의 산물로 여기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속세인들은 고승들이 입적하면 사리의 많고 적음에 큰 관심을 표명하곤 한다.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라.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 그제 세수 78세로 입적한 법정스님이 평소 상좌에게 이르던 말이다. 법정스님은 1971년 ‘미리 쓰는 유서’에서도 “생명의 기능이 나가 버린 육신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사바세계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비움의 철학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열반송은 고승들이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다. 적멸의 순간에 전하는 말이기에 큰 울림을 주곤 한다. 고승들의 열반송은 깨달음을 얻고 처음 발하는 화려한 오도송과는 달리 평범한 언어로 여운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스님은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 하라”는 허망할 정도의 일상어로 열반송을 내기도 했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법정스님이 입적하기 전날 밤 한 말이라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소유 철학’을 담아 열반송을 낸 셈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있음이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봄·가을이면 세속에 나와 법향을 가득 안겨주던 스님의 법어가 쟁쟁하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처럼 ‘무소유’라는 말조차 버린 채 저 피안의 세계로 홀연히 떠난 법정스님이다. (경향신문 박성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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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단상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이 남긴 화두는 ‘무소유’다. 법정은 수필집 <무소유>에서 그 뜻을 이렇게 풀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地上)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이는 인간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존재란 불교의 가르침에 충실한 불자의 모습이다. 법정은 이런 말도 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은 많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물질적 소유와 탐욕의 소유양식에서부터 창조하는 기쁨을 나누는 존재양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란 법정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욕망과 집착에 대해 고뇌하고 성찰하고 답을 구했다. 그 점에서라면 법정의 무소유 화두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화두가 세상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데는 까닭이 있다. 실천이다. 법정은 죽음의 순간까지 무소유를 실천했다. 세상은 법정이 남긴 책들이 절판될 거라면서 마구 사들여 품귀현상까지 빚게 하며 소유에의 집착을 드러냈지만 그는 입적 전 “모든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한다.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정부가 국민훈장을 추서하려 했지만 그의 가르침에 충실한 문도(門徒)들이 거절했다 한다. 주변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고인의 유언에 맞지 않는다며.
‘법정 현상’은 세상이 그만큼 소유와 물신주의에 찌들어 있음의 반증일 게다. 그의 죽음은 무소유를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하여 생각이 미치게 되는 곳이 무소유 정신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이다. 이건 그러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언죽번죽 무소유를 들먹이며 고인을 기리는 정치인, 사회 지도층들을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뭔가 이상하고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탐욕과 권력 추구에 몰두하느라 번들거리는 얼굴로 무소유를 읊조린다는 게 허위의식 아닌가. 가령 의무교육 무상급식을 나라 거덜낸다며 반대하는 입으로 무소유를 기릴 수 있는가. 단상은 이어진다. 이른바 지도층은 무소유 화두를 성찰적 계기로 삼기보다는 지배 이데올로기 강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경향신문 김철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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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정 스님이 언급된 책들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_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인간과 땅의 아름다움에 바침 _ 장 피에르와 라셀 카르티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건가요 _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_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포기하는 즐거움을 누리라 _ 이반 일리히 『성장을 멈춰라』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_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자신과 나무와 신을 만나게 해 준 고독 _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한 걸음씩 천천히 소박하게 꿀을 모으듯 _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_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것들 _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_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 _ 핀드혼 공동체 『핀드혼 농장 이야기』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_ 칼린디 『비노바 바베』
이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_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나는 걷고 싶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_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한쪽의 여유는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가 _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_ 장 프랑수아 르벨·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철학자』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인가? _ 이레이그루크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_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큰의사 노먼 베쑨 _ 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풀 한 포기, 나락 한 알, 돌멩이 한 개의 우주 _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_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두 발에 자연을 담아, 침묵 속에 인간을 담아 _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_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 식물의 비밀 _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_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축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_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_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바람과 모래와 별 그리고 인간 _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_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_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무는 자연이 쓰는 시 _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용서는 가장 큰 수행 _ 달라이 라마·빅터 챈 『용서』
테제베와 단봉낙타 _ 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꽃에게서 들으라 _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_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성은 유한하다 _ 개릿 하딘 『공유지의 비극』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_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_ 디완 챤드 아히르 『암베드카르』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 _ 엠마뉘엘 수녀 『풍요로운 가난』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_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자연으로 일구어 낸 상상력의 토피아 _ 앨런 와이즈먼 『가비오따쓰』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법 _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결론을 내렸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기로 _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_ 격월간지 『녹색평론』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 _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_ 에크하르트 톨레 『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어디를 펼쳐도 열정이 넘치는 책 _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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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기사와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 숲, 2010)에서 책목록을 따왔습니다. 참고하시기를 바라며. 시간이 허락치를 않아서 중복되는 법정스님의 문장들을 추려내지 못했습니다. 이해해주시기를. 법정스님 입적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